프랑스-중국 고위층 거의 이공계 출신…"공대 가야 출세"
"병역특례-장학금 늘리면 인재들 몰려올 것"
기술인력을 우대하는 나라들은 국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국가 엘리트 양성코스인 그랑제콜(Grandes Ecoles) 학교 170여 개 중
80%는 이공계 학교이다. 이들 학교 졸업생들은 100% 취직이 보장된다.
이들 중에서도 수재들만 모인다는 ‘에콜 폴리테크닉’ 학생들은 매년
혁명기념일의 개선문 군사 퍼레이드때 군 대표와 사관 생도들의 선두에서 행진을 한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기술계 장교들을 우대하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랑제콜의 하나인 파리공과대학 브누아
르게(Benoit Legait) 총장은 “학생들에게 파리 증시에 상장된 우량기업 40개 중 35곳의 사장이 우리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얘기하면 학교 선택에 망설임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李春根) 부연구위원은 “중국의
국가시스템은 이공계 중심체제”라고 단언한다.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리란칭(李嵐淸·70) 부총리만 푸단(復旦)대학 경제학과 출신이고 나머지 6명은 모두 공과대학 출신일 정도로 이공계의 인적 기반이
튼튼하다. 99년부터는 매년 2명의 과학자를 뽑아 ‘과학기술대상’을
주고 있다. 상금은 500만위안(약 8억원). 국가에서 주는 상금으로는 최고 액수이다.
서울대 이우일(李愚日·48·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10년 전 중국에서 열린 학회에서 받은 플라스틱 기념 메달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조잡했는데 작년에 받은 메달은 외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며 “이대로라면 3∼5년 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가 많다”고 말했다.
고려대 하덕찬(河德燦·45·화학과) 교수는 “우리는 반도체가 가장
앞서가는 분야지만 이익의 상당 부분을 원천기술 특허료로 내고 있다”며 “이 상태가 계속되면 20년 후엔 기술 종속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지식경쟁 시대에 이공계 인력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공계 기피를 막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외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은 “제2의 경제개발을
한다는 각오로 국가적 차원에서 이공계에 최고 수준의 보상과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 인력은 국가 생존의 문제다. 장비·연구비 지원은 물론, 병역특례 등 파격적인 혜택을 이공계에 열어줘야 한다.”(고려대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장동식 교수) “처우가 달라지지 않는 한 국가를 살릴 우수 인력은 나오지 않는다. 이공계 인력양성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교육부는 과학기술인력 양성 정책을 내고, 과기부는 민간에서 할 수 없는 대형 프로젝트를 지원해야 한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군현 회장)
이공계 졸업자가 낮은 보수 때문에 고통 받고, 졸업 후에 갈 기업이 없는 상태에서 ‘교차 지원 제한’ 등 대증요법(對症療法)만으로 어물쩍
넘기려 해서는 장래의 한국경제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단기적으로는 병역 특례를 확대하고 장학금을 확충하는 동시에 ‘들러리
관료’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기술고시 인력을 대폭 늘리는 등 이공계
우대정책을 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70년대 최고의 엘리트 인력들이
이공계로 몰린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병역 특례였다. 연세대
윤대희(尹大熙·51) 공대 학장은 “미국·일본은 이미 자국 학생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상태지만, 한국은 병역특례를 확대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이공계 인력공급의 위기와 과제’라는 보고서를 만든 삼성경제연구소는 여기에 “대학에 와서도 수학, 물리학 과외를 받도록 만드는 학력 저하의 주범격인 평준화를 폐지하고 수월성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뜨려버린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 서울대 이면우(李冕雨·57·산업공학과) 교수는 “학부모가 국가 미래를 위해 교육관을 바꾸지 않는 한 이공계 기피는 10~20년 내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