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서 대학은 고등교육의 장이자 지성의 상징이다. ‘그 사회의 미래를 보려면 대학을 보라’는 말처럼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사회·문화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적 인프라다. 그런 의미와 존재감에 걸맞게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요구한다. 동시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폭넓은 자율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 대학에 규제의 틀을, 그것도 결과적으로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더구나 이런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교수와 기획실장, 총장을 역임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등록금 대책 태스크포스 위원장까지 맡았다는 것은 자기 부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8월28일과 4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영선(65)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시종일관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8월31일 이뤄진 ‘2013학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및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발표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땐 여러 차례 답변을 정정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정부가 대학에 서열을 매기고 퇴출을 종용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면 답변을 취소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라 가며 다시 답변을 했다. 소신을 지키면서 개혁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원로 학자의 고뇌가 묻어났다.

그러나 그는 대학의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대학은 연구활동도 필요하지만 교육이 기본이 돼야 하는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교육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대학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년 내 대학 지원자와 대학 정원 간의 편차가 급속히 확대돼 상당수 대학이 신입생 부족으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대혼란이 예상되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수님 경력을 보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우리 대학의 수준이나 문제를 잘 알고 계실 듯합니다. 현재 우리 대학은 선진국 대학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국제적으로도 최근 우리 대학 수준이 상당히 향상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너무 양적으로 대학의 수준을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수, 학생수, 교수수, 논문수 등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질적으로 대학을 향상시킬 단계에 왔습니다.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평가도 수량적인 면들을 기준으로 삼은 게 사실입니다. 이젠 우리가 질적으로 과연 좋은 교육을 하고 연구성과를 내고 있느냐를 점검해 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난 7월 세계대학랭킹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100대 대학에 미국 대학이 58개, 영국 대학이 7개, 프랑스와 일본 대학이 각각 5개 포함돼 있는 반면, 한국 대학은 서울대가 유일하게 75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력이 12~13위 수준인 데 비해 아직 대학 수준은 낮은 것 아닙니까.

“우선 그런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것을 중시하는 것 역시 우리가 너무 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 수준이 세계 10위권이다. 그래서 대학도 그 수준에 맞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 같습니다. 고등교육이라는 건 얼마나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연구가 이뤄지는가를 봐야 합니다. 어떻게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를 전달하고 그들의 지식 창조 능력을 키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목표가 돼야지 몇 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목표가 돼선 안 됩니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에는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많습니다.

“홍콩은 소득 수준이 높은 데다 국가 주도로 대학을 집중 육성할 수 있는 곳이어서 홍콩과학기술대와 같은 대학이 나온다고 봅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중국의 경우 큰 나라답게 큰 대학이 많을 뿐 세계적인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학에 30여 년을 재직하셨고 한림대 총장을 거쳐 이제 대학구조개혁위원장까지 맡으셨는데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대학 중 상위 몇 개 대학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대학 수준도 어느 정도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회가 전반적으로 발전해야 대학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대학들은 모든 것을 다하는 종합적인 모델보다는 특성화되고 선별화된 연구와 교육이 이뤄지는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최근 등록금 문제 등으로 대학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학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대학의 미래 비전을 적극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대학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반값등록금’ 논란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학에 보내려면 굉장히 많은 돈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대학 교육은 비싸야 합니다. 고비용으로 고효율의 교육을 하고, 연구를 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대학 교육은 사실 사치재입니다. 사치재는 소득 수준 증가폭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증가하는 특성을 띱니다. 연구와 교육 수준이 고도화될수록 상응하는 비용의 상승도 더욱 가파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반값등록금 논란은) 이런 것에 대한 인식 없이 대학을 평준화, 대중화 관점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이 한때 대교협의 등록금 대책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이어진 답변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학자다운 사고체계를 엿볼 수 있었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은 사치재적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공공성을 지닙니다. 우리나라의 등록금이 선진국보다 비싸 세계에서 두 번째 수준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학생들이 짊어지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가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등록금은 비싸지만 학생 부담은 작은 편입니다. 고소득자는 높은 비용을 내고 대학에 가지만 저소득층은 장학금을 받거나 아주 적은 등록금만 냅니다. 미국의 경우 재원이 정부 재정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기부로부터 나오는데 이 역시 공적 자금입니다. 반면 대부분 유럽 국가의 경우 등록금이 싸거나 무료인데 국가가 공적 자금인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합니다. 결국 미국이나 유럽 모두 공적 자금으로 대학 교육을 지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립대학에 공적 자금을 지원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립이든 국공립이든 공적 자금이 투자돼야 합니다. 대학은 학생들을 공부시키고 연구를 해 공공의 인재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사립대 학생도 국가에 기여하고 공공의 인재로 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공적 자금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대부분의 부담이 학생과 학부모에 전가되면서 등록금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재정 지원을 통해 등록금의 학생 부담률을 20% 정도 완화했는데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합니다. ‘반값등록금’이란 정치적 구호는 정치적·사회적 갈등만 불러일으킵니다. ‘반값’이란 구호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실제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제가 연수를 다녀온 미국 듀크대의 경우 하버드대와 경쟁하기 위해 융합적 어젠다를 세워 해당 분야에서는 하버드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 대학들은 이런 특성화 전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학도 결국 시장경쟁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언론을 포함한 사회 각 분야가 대학을 보는 시각도 천편일률적입니다. 모든 대학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학 자신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나름대로 특성화된 부분을 찾는 대학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 대학을 널리 알리고 지원도 해야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도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잘 가르치는 대학’을 뽑는 ‘ACE 사업’이 있었는데 정말 좋은 사업입니다. 대학원도 그렇습니다. 과도한 학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꼭 학위가 없어도 되는 분야도 있는데 우리 대학의 경우 교수가 되려면 무조건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합니다. 작은 규모의 대학인데도 대학원 학위과정을 다 가지려는 곳도 많습니다. 그럴 경우 정작 교육도 제대로 못하고 연구도 적당히 해버리는 물타기식 교육이 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특정 대학의 경우 문(文)·사(史)·철(哲)보다는 취업이 잘되고 실용적인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 조직을 개편하려다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유펜(펜실베이니아주립대)은 아주 좋은 대학입니다. 이 대학의 발전 전략은 ‘프로페셔널 스쿨’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스쿨, 로스쿨 등을 육성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종합대학은 문·사·철 등 기초학문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조그만 교양대학들이 많은데 비록 대학원을 갖추지 않고 있지만 훌륭한 대학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리의 경우 그런 대학도 없고 그런 곳을 육성할 토양도 갖추지 못한 상황입니다. 물론 모든 대학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린 직업교육 중심이다’, ‘우린 교양 중심이다’ 그렇게 특화해 대학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이런 학교 모델들을 만들어 가면 우리 교육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이 위원장이 대학의 다양성 추구와 이를 위한 자율성 보장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걸 들으면서 인터뷰가 확정된 이래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겐 다소 껄끄러운 질문일 수 있었지만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답변을 이어 갔다.

―대학이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연구 등 학교 운영에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학구조개혁위원회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학의 자율성은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학문의 자율성은 100% 보장돼야 하고, 교수들의 교권, 강의 권리 등도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데다 대학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입시가 전체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정도니까요. 그리고 국민들 간에 교육에 대해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완전히 대학에 맡겨 두었다가 국민적 공감대와 충돌하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대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만 규제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놓고는 토론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3불(본고사 부활 불가, 고교등급제 불가, 기여입학제 불가)정책은 공감대 수준을 넘어 신성불가침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3불정책을 우회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좋은 정책이라고 보입니다.

“입학사정관제는 굉장히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이 전형의 핵심은 학생들을 시험을 통해 일렬로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간의 부작용도 있겠지만 학교별로 자율성을 가지고 약간의 주관적 판단을 하게끔 두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입학사정관전형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국 수능 점수 1~2점에 집착하게 되는 거지요. 사실 사회에 나오면 수능 점수 1~2점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양적이고 수적인 평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질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대학에 자율성을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구조조정도 자율에 맡기면 되는데 굳이 지원제한 대학을 지정하는 방식이 필요합니까.

“기업도 아닌 대학에 구조개혁이란 단어는 다소 생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2017년은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대학의 입학정원 수보다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적기 시작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한때 80%대를 유지하던 대학진학률이 70%대로 떨어졌고 앞으로는 더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결국 대학정원과 졸업자 간에 엄청난 갭이 생기게 되고 그 갭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점진적으로 그 같은 상황에 대비하자는 것이 대학 구조개혁의 취지입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대학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즉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다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대학 중에 사회의 믿음이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제로 지난달 발표된 대학 구조개혁안과 관련, 일부 대학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있습니다.

“지난해 하위 15%에 선정된 43개 대학 중 22곳이 빠져나갔고 새로운 대학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는 지원제한 대상에 선정됐던 대학들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이번에 지원제한 대상으로 발표된 대학 중에는 지난해 하위 30%에 들었던 대학들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 대학은 기본적인 교육인프라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미흡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일부 논란이 있더라도 대학 구조개혁이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성과로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주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중요한 발전적 시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입학사정관제의 경우 대학입시정책에 새로운 사고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대학에 상당한 자율성을 주는 정책입니다. 단점이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잘 정착되도록 해야 합니다.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도 좋은 성과라 봅니다. 1조7500억 원의 재정을 투입했는데 대학 교육에 정부 재정을 투입했다는 점은 큰 성과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육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 교육을 극찬하고 실제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에 어떤 숨겨진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교육의 힘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고 그게 우리나라의 대중교육을 성공하게 한 발판입니다. 다만 그런 교육에 너무 많은 사회적 자원을 쓰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제 우리 교육의 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창의성·도덕성과 같은 덕목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엘리트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다양성, 다양한 기회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대학 구조개혁 관련 현안들에 대한 질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경제학자로서 최근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경제 현안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대적 요구에 의해 제기된 문제라고 봅니다. 완성된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변화, 기술적 변화, 여건 변화에 따라 시장을 규율하는 제도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케인스주의가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 성장에 기여했지만 정부 영역이 지나치게 확대되다 보니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났고, 또 한번 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졌고 마치 역사가 신자유주의에서 종결된 것처럼 들뜨기도 했지만 최근 또다시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금융자본의 문제점이 터져 나온 것이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이 생기고, 정보를 가진 사람의 탐욕에 의해 전체에 큰 피해를 주는 상황이 온 것이죠. 이처럼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초래되면서 다시 시장을 규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부문의 규칙을 정비해 보자는 경제 민주화는 시대적 요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로의 결정은 결코 투표로 할 수 없습니다. 1원1표로 돌아가는 것이 시장경제인데, 진짜 1원1표여야지, 그 이상의 힘(정치적 요구)이 작용하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순환출자,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소유 규제) 등이 핵심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모두 중요한 어젠다지만 다른 어젠다들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하루아침에 개혁해 바꾸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진지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정치 민주화에 30년이 걸렸듯이 경제 민주화가 이뤄지려면 20~30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던지고 있는데 전 사회적 차원에서 토론이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최근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무상복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상보육은 저출산 문제나 여성 인력 활용 차원에서 시행됐는데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재정이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확대해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당 부분을 지방 재정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재정 구조로 볼 때 정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무조건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보육과 교육은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분야인 만큼 지원을 하되, 급격한 부담 증가는 피해야 할 것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교육정책과 관련,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으십니까.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 발전과 함께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이뤄 선진국으로 가려면 고등교육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그간 고등교육의 양적 발전을 이뤘지만 이젠 질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